한글과 여백

나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표준을 벗어난 표기를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글의 속도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좀 늦더라도 표준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글은 정확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김규항 님의 블로그에서 안상수 교수의 수상 소감을 읽고는 번뜩 딴 세상에 다녀온 것 마냥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친다. 수상 소감을 마감하는 'ㅎㅎ' 라는 단어에서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을 관통하는 힘을 느낀다. 누구에게는 '흐흐' 로, 누구에게는 '호호' 로, 또 다른 누구에게는 '헤헤' 로 읽힐 수 있는 저 표기는 읽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뉘앙스로 읽혀진다. 저 마다의 방식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유, 비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찬 여백이 느껴진다. 딱 부러지지 않는 우리네 정서처럼 '거시기' 라는 단어 하나로 많은 걸 표현할 수 있는 우리네 대화처럼, 여백을 내포할 수 있는 우리의 글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느낌이다.

사족. 디자인 1세대 안상수 교수는 한글의 타이포그라피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이다. '안상수체' 를 통해 처음으로 탈네모꼴 폰트를 선보였고, 의미론적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변용을 통해 한글의 미학적 가치와 디자인 요소로서의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Posted by Lipio

2007/01/28 02:57 2007/01/28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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