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가게

점심 때 회사분들과 길 건너 새로 생긴 식당에 갔습니다. 무슨무슨 교자라고 간판을 걸어둔 것을 보니 만두에 꽤 자신이 있는 모양입니다. 제가 만두를 워낙 좋아하거든요.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기본찬 조차 나오질 않습니다. 둘러보니 저희 말고도 아직 음식을 받지 못한 테이블이 한 둘이 아니네요. 이제 막 음식이 나오는 한 테이블은 벌써 30분을 넘게 기다렸다며 사장 나오라고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자리는 100석이 넘는데 종업원들은 일이 손에 익지 않아 우왕좌왕하고 있고 주방에서는 아줌마 두 분이 모든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메뉴였습니다. 교자집이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웬만한 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다 팔더군요. 낚지볶음부터 알밥, 칼국수까지 수십가지 메뉴가 빽빽하게 적혀있습니다.

결국 저희는 10여분을 넘게 기다리다가 주문을 취소하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더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우리보다 한참 먼저 들어간 팀도 아직 음식을 받지 못한 걸 보고 더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옆 가게로 옮겨 새로 주문을 했고, 교자집 가자고 꼬셨던 저는 같이 간 분들에게 사죄의 의미로 해물파전을 하나 쐈습니다.

가게 사장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 회사원들이 많으니 다양한 점심 식사를 제공하고 싶으셨겠죠. 하지만 점심시간 10분이 아쉬운 회사원들에게는 맛도 중요하지만 시간도 중요합니다. 그 기준에 맞추려면 일 잘 하는 종업원들과 경험 많은 주방원들을 훨씬 많이 고용해야 할 겁니다.

메뉴를 일원화하는 것도 해결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간판이 교자집이니 교자 메뉴 몇 개로 승부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한 쪽에서 계속 찌면서 주문 들어오는대로 쓱쓱 내보내면, 시간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맛만 있다면 계속 찾게 되겠죠.

결국 선택과 집중의 문제입니다. 서비스를 만들면서도 이런 경우는 참 많습니다. 사용자가 원한다는 핑계로 이런 저런 잡다한 기능으로 무장하는 서비스가 많습니다. 론칭 서비스가 이런 모습이라면 최악이죠. 사용자들은 서비스를 채 둘러보기도 전에 어려운 서비스라는 낙인을 찍어 버릴 것입니다.

물론 포탈처럼 백화점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서비스 하나를 위해 뒤에서는 수 천명의 직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규모가 안 된다면 경쟁력있다고 생각되는 기능 한 두개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히 좋습니다. 기능을 줄이기 위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정작 나온 걸 보면 군더더기 투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까지 빼고 또 빼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 만두 가게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다시 갈 일이 없습니다. 거기 아니어도 갈 데 많거든요. 인테리어니 간판이니 꽤 돈 들인 티가 나던데, 사장님의 의욕이 되려 해를 부른 것은 아닌지 참 안타깝습니다.

Posted by Lipio

2008/04/02 15:24 2008/04/0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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