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언론은 실력있는 기자들을 통해 기사를 생산한다. 유행을 타는 옷은 어느 매장에나 걸려있기 마련이고, 맛있는 음식은 금새 입소문을 탄다. 하지만 세상에는 가치는 떨어지지만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그런 작고 소소한 것들의 총량은 메이저의 총량보다 더 크고 가치있을 수 있다.
이승철보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도 난 내 친구의 노래가 듣고 싶고, 문맥의 앞뒤가 잘 맞지 않아도 친한 친구가 쓴 일기를 보고 싶다. 유행에는 떨어지더라도 여자친구가 떠 준 목도리를 두르고 다니고 싶고, 맛은 없어도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다.
싸이월드는 그런 일상적인 삶의 총량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니홈피에 담긴 결코 주목받지 못하는 각 삶의 총합이, 다른 검증된 메이저 컨텐츠들보다 높은 트래픽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싸이월드의 꿈은 ‘친구와의 일상적인 대화’, ‘취미가 같은 사람들의 모임’,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들려주고 싶은 욕구’처럼 일상적인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온라인으로 옮겨오는 것이라고 한다. 나아가 오프라인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소박한 개개인들의 꿈을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부터 귀여니까지, 세상에는 엄청난 양의 책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얘기들 중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은 극히 적다. 출판사로 도착하는 수많은 원고 중 최소수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는 원고만 인쇄기로 담아진다. 그리고 버려지는 원고들은 그 가치와는 상관없이 작가의 방 어느 구석에서 소리없이 죽어간다.
페이퍼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획된 서비스이다. 독자가 한 명이든 열명이든 상관없이 누군가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이다. 그래서 ‘
그렇기 때문에 블로그처럼 글쓴이와 내가 동등한 레벨의 토론자로서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읽은 사람이 그것에 대한 감상을 덧붙이는 것처럼 반사적 리액션이 주를 이루게 된다.
페이퍼가 블로그보다 좋으냐 나쁘냐의 흑백논리로만 판단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할 수 있다. 페이퍼는 블로그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서비스도 아니고, 블로거들을 끌어오기 위해서 만들어진 서비스도 아니다. 블로그와 페이퍼의 공통 분모는 분명 존재하겠지만, 근본적인 서비스의 목적 자체가 다른 것이다.
같은 항아리도 된장을 담으면 장독이 되고 꽃을 담으면 화병이 된다. 블로그에서 작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페이퍼로 커뮤니케이션 욕구를 해결하는 사람도 있다. 꼭 둘을 동등하게 놓고 비교해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는 짜장과 짬뽕 중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당구장에서는 짜장이 맛있고 술마신 다음날에는 짬뽕이 땡기듯, 블로그도 페이퍼도 쓰고 싶은 사람이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지 않을까?


